12. (가), (나)를 읽고 <보기>를 참고하여 시의 심상에 대해 이해한 바를 <작성 방법>에 따라 서술하시오. [4점]
(가) 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준 일이 없기에 흰 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靑)무우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 김기림, 「바다와 나비」 - (나) 새벽 시내버스는 차창에 웬 찬란한 치장을 하고 달린다 엄동 혹한일수록 선연히 피는 성에꽃 어제 이 버스를 탔던 처녀 총각 아이 어른 미용사 외판원 파출부 실업자의 입김과 숨결이 간밤에 은밀히 만나 피워 낸 번뜩이는 기막힌 아름다움 나는 무슨 전람회에 온 듯 자리를 옮겨 다니며 보고 다시 꽃 이파리 하나, 섬세하고도 차가운 아름다움에 취한다 어느 누구의 막막한 한숨이던가 어떤 더운 가슴이 토해 낸 정열의 숨결이던가 일없이 정성스레 입김으로 손가락으로 성에꽃 한 잎 지우고 이마를 대고 본다 덜컹거리는 창에 어리는 푸석한 얼굴 오랫동안 함께 길을 걸었으나 지금은 면회마저 금지된 친구여. - 최두석, 「성에꽃」 - |
<보 기>
심상은 언어를 통해 주어진 감각 정보가 마음속에 그려 놓은 형상들이다. 시의 심상은 단순히 어휘 하나에 따라오는 효과가 아니다. 의미 있는 심상은 시행과 시 전체의 효과로 만들어진다. 심상은 일차적으로 시각, 촉각, 청각, 미각, 후각 등 인간의 지각 작용을 통해 형성된다. 또한 시적 표현을 통해 ㉠하나의 감각이 다른 감각으로 전이된 심상이 형성되기도 한다.
시적 심상은 비가시적인 것을 가시화하는 기능을 가진다. 대상이 눈앞에 실제로 존재하지는 않지만, 언어가 재현하는 대상에 대한 심상은 시적 상상과 결합해 새로운 의미를 불러온다. 가령, (나)의 ‘창에 어리는 푸석한 얼굴’은 단순히 얼굴의 상태를 묘사한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이 얼굴은 화자의 현재 모습이기도 하며, 어제 버스에 탔던 사람들의 ( ㉡ )와/과 ( ㉢ )이/가 만들어 낸 흔적으로 이들의 삶을 가시화한다. 나아가 이 얼굴은 오랫동안 함께 길을 걸었으나 만나지 못하는 친구의 얼굴까지도 떠올리게 한다.
<작성 방법>
◦<보기>의 ㉠의 예를 (가)에서 찾아 쓰고, 그 심상이 가시화하는 의미를 서술할 것.
◦<보기>의 ㉡, ㉢에 들어갈 말을 (나)에서 찾고, 이를 활용하여 ‘성에꽃’의 의미를 서술할 것.
[ 문제 풀이 ]
1. ㉠은 공감각적 심상입니다. (가)에서 찾으면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이 구절은 시각을 촉각으로 전이하여 나비가 겪은 냉혹한 현실을 ‘새파랗다’로, 그로 인한 나비의 좌절감과 서글픔을 ‘시리다’로 가시화 하였습니다.
2. ㉡, ㉢에 들어갈 말은 작품과 <보기>를 비교하면 바로 찾을 수 있습니다.
어제 이 버스를 탔던 처녀 총각 아이 어른 미용사 외판원 파출부 실업자의 입김과 숨결이 간밤에 은밀히 만나 피워 낸 번뜩이는 기막힌 아름다움 |
어제 버스에 탔던 사람들의 ( ㉡ )와/과 ( ㉢ )이/가 만들어 낸 흔적으로 이들의 삶을 가시화한다. |
[ 모범 답안 ]
<보기> ㉠의 예는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이다. (시각의 촉각으로 전이한 심상을 통해) 냉담하고 비정한 바다의 세계에 상처 입은(또는 좌절한) 순수한 존재란 의미를 가시화하였다.
<보기>의 ㉡, ㉢에 들어갈 말은 ‘입김’과 ‘숨결’이다. 성에꽃은 새벽 시내버스에 탄 사람들의 입김과 숨결로 만들어졌다. 따라서 성에꽃은 '고단한 삶을 살아가지만, 정열적으로 살아가는 서민들의 아름다운 삶'을 의미한다.
[ 관련 내용 ]
바다와 나비
- ‘바다’는 삼월에도 꽃이 피어나지 않는 무생명의 공간으로 문명의 무생명성 내지 불모성을 상징한다. 그 곳을 ‘청무우 밭’으로 오해해서 내려갔다가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오’는 ‘흰나비’는 현실의 모진 세파를 경험해 보지 못한 낭만주의적 존재로 어쩌면 김기림의 청년시절일지 모른다. 육당의 ‘해에게서 소년에게’ 이후 ‘바다’는 근대화로 가기 위해 반드시 겪어야 할 모험과 시련, 또는 문명에 대한 동경을 상징하는 장소이다. 시인은 역사 혹은 운명과 같은 거대한 힘 앞에서 좌절할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모습을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는 표현으로 형상화한다. 이는 힘없이 날개만 파닥거리던 당시 식민지 지식인의 초라한 모습의 시적 상징이다.
성에꽃
- 이 시는 어느 추운 겨울날의 새벽, 시내버스 창가에 어린 성에를 통해서, 힘겨운 삶을 함께 살아가는 서민들에 대한 화자의 애정과 1980년대 암울한 시대 상황을 노래한 작품이다. 특히 이 시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시적 화자가 동시대 서민들의 삶의 모습을 차창 너머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버스에 앉아 그들이 남긴 숨결을 함께 느낀다는 것이다. 이러한 화자의 모습은 차창에 서린 ‘성에꽃’의 ‘꽃 이파리’들을 자리를 옮겨 다니며 들여다보는 행동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나는데, 이를 통해 그들의 삶에 애정과 연민을 느끼는 화자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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